2일 밤 9시 서울 서촌은 썰렁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음식점 영업시간 제한 실시 나흘째인 이날, 식당은 대부분 문 닫았고 거리는 지나가는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 얼마 전 서촌에 문 연 중식당 ‘티엔미미(甛密密)’에 요리사 3명이 들어섰다. ‘딤섬의 여왕’으로 유명한 정지선(37) 티엔미미 오너셰프가 임철호(47)·이재훈(40)·안재현(29)씨를 반갑게 맞았다. 이 네 요리사는 집에서 혼술 할 때 와인·맥주·소주·전통주 등 주종별로 곁들이기 알맞은 안주를 담은 요리책 ‘주당셰프들의 오늘밤 술안주’(수작걸다 刊)를 함께 펴냈다.
이들뿐 아니라 요리사는 원래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 내지는 악명 높은 직업이었다. 정지선씨는 “어려서 한창 일할 때는 브레이크 타임(점심과 저녁 사이 쉬는 시간) 때 소주를 반 병씩 마셨다”며 “선배들의 권유로 마시게 된 소주·고량주 한 잔이 이제는 피로 해소제가 되었다”고 했다. 인기 이탈리아 음식점 ‘트라토리아 연남’과 ‘트라토리아 후암’을 운영하는 임철호 셰프는 “직원들에게 불만이 있으면 데리고 나가서 술 먹이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요리사들의 음주 문화도 바뀌고 있다. 서촌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 ‘까델루뽀’와 경남 거제 ‘오스테리아 사르데냐’를 운영하는 이재훈 셰프는 “저녁 회식은 몇 년 동안 거의 하지 않았고 낮술을 한다”며 “점심 때 인기 많다는 레스토랑에 직원들과 가서 와인을 마신다”고 했다. 서촌 ‘트라토리아 고스마’와 와인바 ‘아주르’, 서대문 ‘오스테리아 고스마’ 오너셰프인 안재현씨는 “우리 직원들은 자기네들끼리 친해서 나 빼놓고 마시러 다닌다”며 웃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에 자주 올라오는 유명 식당을 여럿 운영하며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이 스타 셰프들도 코로나19를 피하지는 못했다. 임철호 셰프는 “1997년부터 식당에서 일하며 여러 사건을 겪었지만 이번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재훈 셰프는 “대구 때는 매출이 30%쯤 줄었는데 이번에는 70~80% 된다”며 “까델루뽀를 같은 장소에서 올해로 10년째 했는데, 이번 주가 가장 매출이 적은 주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티엔미미를 지난달 31일 오픈한 정지선 셰프는 “7월에 계약하면서 ‘코로나가 이제는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이렇게 터질 줄 몰랐다”고 했다. 안재현 셰프는 “원래 연말 성수기 준비를 위해 9월쯤 막내(요리사)를 뽑는다”며 “이미 요리사 한 명을 뽑았지만 출근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오기로 했던 요리사도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요. 알바도 줄였고요.”
많은 이가 ‘코로나 우울증’ ‘코로나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음식점은 코로나에 따른 피해가 가장 큰 업종 중 하나이지만, 의외로 이 요리사 넷은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 않다”고 했다. “저뿐 아니라 주변에도 별로 없어요. 요리사들은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이죠. 손님을 대해야 하는 요식업, 서비스업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런가, 보통 정신력이 강한 친구들이 이 일을 하더라고요.”(임철호) “뭐라도 해야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뭐가 나오나요.”(이재훈) “뭔가 계속 일을 만들려고 하는 거죠. 다음 주부터는 음식 포장·배달을 시작하려고요.”(안재현) “매장에서 팔던 메뉴를 어떻게 다른 형식으로 팔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제품화하는 방법도 계속 고민하고요.”(정지선)
요리사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사라진 것들 중에서 ‘손님’이 가장 그립다고 꼽았다. “주말에 자리가 없어서 줄 서서 기다리던 일이 그립네요.”(정지선) “손님이 있어야 일하는 느낌이 나는데, 손님 없이 일하려니 저도 처져요.”(안재현) “손님이 너무 많아서 12시 지나서 겨우 매장 정리하고 마시는 술이 진짜 달아요. 10시에 마감하고 마시는 술은 별로 맛이 없어요. 그렇게 술 마시면 희한하게 다음 날 더 피곤하더라고요. 힘들게 일하고 나면 12시에 마시고 3시간만 자고 일어나도 개운한데 말이에요.”(임철호)
요리사들이 기분 좋은 피로와 함께 하루를 마감하며 술 마시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손님들도 바라 마지 않는다.
“소주는 피로 해소제”라는 酒黨 요리사의 ‘혼술 팁’
주당(酒黨) 요리사는 음식과 술의 궁합 즉 페어링(pairing)에 신경 쓴다. “집에 가지고 있는 와인이 200병을 넘는다”는 이재훈 셰프는 “와인 페어링(음식과 술의 궁합 맞추기)의 1순위는 질감 즉 바디감”이라고 했다. 바디감이란 술을 입에 머금었을 때 얼마나 묵직하게 느껴지느냐를 뜻하는 와인 용어다. “바디감이 가벼운 와인은 입에 머금으면 물 같고, 무거운 와인은 우유 같아요. 가벼운 바디감의 와인은 가벼운 요리와, 묵직한 와인은 진한 음식과 페어링합니다. 음식을 꼭꼭 씹어 음미한 후 입안에 음식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 다시 와인을 마십니다. 입안이 깔끔하게 느껴지면 확실하게 페어링된 상태입니다.”
“하루를 맥주로 시작하고 끝낸다”는 임철호 셰프는 “맥주 음용 온도는 페어링하는 안주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차가운 안주에는 맥주도 차게 즐기고, 따뜻한 요리에는 맥주도 너무 차갑지 않게 즐깁니다. 맥주만 마실 때는 라거맥주는 섭씨 4~5도, 에일맥주는 5~7도가 적당해요.”
소주가 피로 해소제라는 정지선 셰프는 “소주는 8~10도 사이가 맛있다”고 했다. “냉장고에 넣어둔 소주는 4~6도 정도이므로 잠시 실온에 두었다가 즐겨야 소주 본연의 맛을 더욱 느낄 수 있지요. 종종 소주를 슬러시처럼 얼리거나 얼음에 타서 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음식과의 조화가 어렵습니다.”
안재현 셰프는 “높은 도수의 술보다는 적당한 도수의 술로 은은하게 조금씩 취기가 오르는 걸 선호한다”며 “전통주는 이런 나의 음주 취향에 딱 들어맞는 술”이라고 했다. “알코올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소주와는 다른 느낌에 처음 접했을 때부터 끌렸죠. 서촌에 와인바를 오픈하면서 와인리스트 한쪽에 전통주를 넣었지요. 전통주와 와인, 천천히 음미하기 좋고 요리와 함께하면 풍미가 배가된다는 점에서 알고 보면 꽤 닮았어요. 전통주는 재료에 따라 그 향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항상 술의 향부터 맡아봅니다. 달콤한 향이라면 디저트처럼 가벼운 안주와, 강렬한 향이라면 느끼하거나 진한 안주와 페어링합니다.”
September 05,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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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손님 몰려 밤늦게 마감하고 마시는 술이 진짜 달았는데···”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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